인터뷰

집에서 '성병'을 검사할 수 있다면…

[CEO인터뷰] 박지현 3J 대표

2021. 03. 16 (화)
'굴욕 의자'라는 것이 있다. 맞다.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본 여성이라면 아는 그 의자 말이다. 산부인과 검진을 받을 때 앉는 의자인데, 이 굴욕 의자에 앉기 싫어 병원 가는 것을 미룬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잘 모를 이들을 위해 굳이 비슷한 느낌을 찾아 상상해 보자면, 뒤가 뚫린 옷을 입고 침대에서 엉덩이를 들고 엎드려 검사를 기다릴 때 느껴지는 떨림 정도? 건강과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병원을 가기 꺼리는 이유는 검사 과정에서의 불편함 때문일 터다. 

여성만의 일도 아니다. 남성도 각종 성매개질환이 의심되면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역시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자니 번거롭고 괜히 눈치도 보여 미루고 미루다 병을 키우고 나서야 병원에 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집에서 직접 검사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실제 영국에서는 검사 키트를 이용해 집에서 직접 소변이나 질액을 체취한 뒤, 이를 검사센터에 보내 결과를 받아보는 식으로 검진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조금 더 편하게 검사를 할 수는 없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고군분투 중인 스타트업이 있다. 
◇ "불편한 성병 검사 집에서 할 수 있다면"에서 시작…'체킷' 
"일상의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문제점 리스트를 적으며 아이템을 찾고 있었어요. 어느 날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산부인과 얘기가 나왔죠. 질염같은 간단한 성병 검사를 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가야 하는데 검사 과정이 불편해 가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의아했어요. 영국에서는 무료키트를 이용해 비대면으로 쉽게 STD 검사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한국에는 이런 게 없다는 얘기를 듣고 '와, 이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싶었어요."

박지현 쓰리제이(3J) 대표가 말했다. 2019년 어느 날, 이렇게 박 대표의 '체킷'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사업에 관심 있는 후배들을 모아서 곧바로 제품 개발에 나섰다. 2019년 11월 개인사업자로 창업한 뒤 지난해 7월 법인으로 전환했다. 
◇ "광고 없이 두 달만에 580개 판매…편하고 눈치 안보여서 만족"
이렇게 쓰리제이(3J)의 국내 최초 비대면 STD(성매개질환) 검사 서비스 '체킷'이 탄생했다. 

검사 과정은 이렇다. 온라인으로 '체킷'을 신청하면 집으로 검사 키트가 도착한다. 키트에 있는 용품으로 소변이나 질액을 체취해 우편으로 검사질병센터에 보내면, 진단 결과가 의사에게 전달되고, 의사에게 검사 결과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 검사로 임질, 매독, 헤르페스 등 12종의 균과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검사와 같다. 이 모든 과정이 걸리는 시간은 이틀,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려면 일주일 가량 걸린다. 

쓰리제이는 지난해 3월 서비스를 론칭, 두 달간 시범서비스를 진행했다. 특별한 홍보 없이도 두 달만에 580명이 체킷을 구매했다. 구매자는 대부분 20~30대로, 여성이 65%, 남성이 35%였다. 

구매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체킷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구매자들은 스스로 하는 편리함(77.2%), 비대면으로 심리적 부담 감소(72.8%), 비밀스럽게 진행할 수 있어서(68%), 눈치가 안 보여서(62.2%) 등이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 의료법 위반 지적에 '잠시 멈춤'했지만…"다시 시작" 
꽤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지금 시장에서 체킷을 살 수 없다. 의료법상 원격의료 등에 해당해 불법일 수 있다는 지적에 두 달간의 시범서비스를 끝으로 '일단' 판매를 중단했다. 현행법상 의료 검사와 진단은 모두 의사가 직접 해야 한다. 

국내에서 원격의료 행위는 여전히 불법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진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여전히 그렇다. 아산나눔재단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케일업 추적 연구'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20년 들어 정체기를 맞은 이유를 "원격의료를 금지하는 한국 제도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해외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헬스기업 투자액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54억 달러(약 6조1398억 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출시 당시, 적용할 수 있는 법이 명확하지 않았어요. 관련 기관 등에 문의를 했지만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더라고요. 일단 시작을 했는데 의료법상 불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중단했죠. 그러다 지난해 12월 원격진료, 의료알선행위 등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어요." 

사업이 존립 위기에 있던 지난해 5월, 디캠프와 광주광역시,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함께 개최한 '디데이(D.DAY)'에서 본선에 오르며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스타트업 등용문으로도 불리는 이곳에서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5개 팀에 선정됐다. 

법적인 문제로 잠시 멈춰야 했지만, 이 시간을 서비스를 더 단단히 만드는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사용자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개선하고, 앱으로 진단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직접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싶은 이들을 위해 협업 병원을 늘리는 등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도 찾고 있다. 
 
◇ "결국 세상은 변할 것…꼭 필요한 서비스니까" 
"재구매 문의가 많이 와요. 생활 속 불편함을 해소했다는 거고, 분명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요."

30대 초반,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 대표가 현행법상 사업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은 빨리 접는 것 아닐까? 법, 그것도 의료법을 스타트업 대표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렇다면 아직 책임질 것이 별로 없을 때 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더 영리한 선택일 수 있다는 얘기다.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우울했죠. 그만둘까도 생각했고…하지만 결국은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은 변하고 있고,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이 같은 선택이 의아해보일 수 있지만, 박 대표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초등학교 때 예중을 목표로 바이올린을 열심히 연습했다. 중학교 때 음악 장학생으로 홀로 영국 유학을 갔는데,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단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수학. 런던 정경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다. 학교를 다니며 가장 열심히 한 것은 락밴드 활동이었다. 

"보컬이었는데 공연을 하고 수익금을 기부하면 멋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기획부터 공연까지 진짜 열심히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아는게 숫자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숫자를 이용한 실용적인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이번에는 서울대 도시계획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이때 우연히 스타트업 박람회에 갔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스타트업을 발견했고, 입사해 3년간 일했다. 

"일을 하다보니 내 사업을 하고 싶더라고요. 일상에서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찾아서 해결해주고 싶었어요. 당연히 진로와 미래에 대해 불안하기도 하죠. 주변 친구들이 취업을 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면 흔들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당장 돈을 벌고, 안정적인 것보다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 "성병 진단은 시작일 뿐…집에서 각종 질환 진단할 수 있도록 하는게 목표"
박 대표의 꿈은 꽤 크다. 각종 질환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종합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목표다. 성병 진단 키트인 '체킷'은 그 시작이다. 

"저희 목표는 'Easy and simple healthcare'에요. 성병 진단 키트로 시작한 건 사람들이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병원 중 하나가 산부인과와 비뇨기과라서고요. 당장 가장 불편한 점을 해결하고, 원격의료 시스템이 일반화되면, 다른 진료 과목으로 확대해나갈 생각이에요.

이를 통해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동안 불편해서 병원을 찾지 않던 이들이 자신의 건강 상황을 쉽게 진단할 수 있게 되면, 병을 빨리 찾고 치료를 받을할테니 전체 의료시장 규모도 커지지 않을까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먼 길을 함께 갈 동료도 찾고 있다. 

"이제 정말 시작 단계인 회사잖아요. 저희가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의 비전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분을 찾고 있어요. 우리가 세운 가치들이 말뿐이 아니라 진짜라고 와닿는 회사를 함께 만들 수 있는 분과 함께 하고 싶어요."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